제목 신명의 숲, 사물놀이 (1)
등록일 2008.08.19 조회수 1849
“처음 듣는 소리인데도 그리웠다. 알지도 못하는 야단법석을 덜게 되었다. 작은 해협 저쪽에 부는 바람은 지금도 먼 예날 사람들의 기억이나 통곡을 품고 거칠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 소리에 한번 칼날을 대면 선혈이 튀어 오르는 광경이 보일 듯하다. 이만큼 북받쳐 오르는 소리를 만난 것은 처음이다. 사물놀이, 나는 그들을 계속 질투하고 있다.” 일본 다이코(큰북)의 명인 하야시 에데스는 사물놀이가 선사한 문화적 충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92년 세계타악인대회에 함께 참여한 뉴욕 필하모닉의 타악 수석 모리스 랭은 후에 이런 편지를 직접 써서 보냈다. “자그마한 남자들이 내놓은 작고 초라한 악기에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는덴 연주 후 5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물놀이는 내 인생 최고의 위대한 공연이었습니다.”

지금의 사물놀이를 존재하게 한 네 명의 남자들이 다시 한 무대에 선다(3월 6일~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난 78년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문화아지트 ‘공간사랑’에 패기만만한 CUD년 ‘잽이(악사)’들이 모여 초연한 후 무대로 처음 농악기를 끌어 들여 한판 놀이를 벌인지 서른 해를 맞이했다. 사물놀이를 범지구적 사운드로 극상시킨 ‘미스터장구’ 김덕수는 장구를, 최고의 쇠잡이이자 구음 명인인 이광수는 꽹과리를, 한국 타악의 세계화를 선도하는 최종실은 북을, 형님들과 함께 남사당놀이의 맥을 이어가는 명인 남기문은 징을 들었다. 어린 시절 기억하던 걸립패의 가락을 정리하고 풍물, 무속음악 등의 가락들을 완벽한 음악적 형태로 다듬는데 젊음을 보낸 이들. 이젠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마음만은 그때 그 시절 청년이다. “자유롭게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70년대 말에 좁은 극장에서 문화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사물놀이는 가장 전통적인, 소외 받은 그 지점에서 몸부림 치고 일어났습니다. 사물의 탄생은 조상들이 준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물의 탄생은 조상들이 준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덕수의 말에 동료 최종실이 추임새를 넣는다. “우리는 눈빛만 봐도 압니다. 서로가 없으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무대에서만큼은 비로소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게 됩니다.” 옛 남사당패의 운명도 만나서 흥을 돋우고 다시 뿔뿔이 흩어져 다른 마당에서 죽을 듯 신명을 다 하는 것 아니었나. 청년들의 새까맣던 머리에는 흰 눈이 내려 앉았지만 소리를 타고 떠도는 바람의 운명은 여전히 그들의 것이다.

사물놀이란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였다. 네 악기의 소리와 청년들의 혼에 반한 민속학자 심우성은 30년전 ‘사물놀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네 가지 물건(악기)의 신명난 한판 놀이라는 흥겨운 이름. 유일한 가락으로 세상을 감동시킨 사물놀이는 ‘samulnori', 사물놀이 하는 사람은 ’samulnorian'이라는 온전한 이름을 얻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공식 등재됐다. 사물놀이의 위대함에 대한 찬사 역시 바다 건너 사람들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사물놀이는 옛날 마당에서 무대로 자리를 옮겨 공연의 한 종류가 되었지만, 그 기운을 주고받는 데 있어서는 어떤 예술과도 비교할 수 없다. 수없이 많은 외국 공연에서 드레스와 턱시도를 갖춰 입은 외국 관객들은 사물놀이의 흥에 이끌려 결국은 로비까지 함께 따라 나가곤 한다. 유연한 가락과 박력 있는 리듬은 우리 것이지만 이를 즐길 때 만큼은 어떤 구분도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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