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신명의 숲, 사물놀이 (2)
등록일 2008.08.19 조회수 2492
는 ‘사물놀이는 인생을 활기차게 만드는 최고의 음악과 춤’이라고 극찬했다. 과연, 작은 스튜디오에서 열린 미니 콘서트 같은 사물놀이이라고 극찬했다. 과연, 작은 스튜디오에서 열린 미니 콘서트 같은 사물놀이가 시작되자 살아 날뛰는 소리에 내 온몸의 세포는 만개했고, 내 피는 달궈졌다. 사물놀이의 가장 큰 매력은 네 악기가 서로 만나 우리가 아고 잇는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기운찬 충동의 꽹과리, 화려한 음색의 장구, 인류보편적인 울림의 북, 웅장한 울음의 징. 이 소리들은 서로 할퀴고 보듬으면서 경쟁하듯 어울려 마침내 절정에 이른다. 꽹과리는 시간을 소리로 다져내고, 북은 이를 몇 개의 덩어리로 품으며, 장구는 그 사이를 촘촘히 채워 간다. 그리고 징은 제각각 뻗치는 세 개의 소리 무더기를 크게 취감아 하나로 부드럽게 묶어준다. 네 가지 악기들의 진동이 어우러지고 화합해서 만드는 신명의 숲 한가운데서 나는 광풍과 미풍을 몸으로 맞고 있었다. ‘장구는 우리의 배 창자를 뒤집어 엎을 정도의 위력으로 설득력을 발휘했고, 꽹과리는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골수를 파고드는 웅변으로 신의 목소리를 듣게 해줬고, 북은 가슴을 두드리는 간곡한 기도처럼 마음을 뒤흔들고, 징은 그 모두를 감싸는 소리로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연극평론가 구희서의 표현만큼 영겁과 같은 찰나의 기운을 정확하게 묘사한 문장은 일찍이 보지 못했다.

이윽고 사물의 소리가 스튜디오의 천장을 찌르자 천둥번개와 비, 구름과 바람이 동시에 몰려 들었다. 사물의 울림은 종종 자연의 그것과 비교된다. 꽹과리는 천둥번개, 장구는 비, 북은 구름, 징은 바람의 울림을 담은 악기이며 각각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퇴공, 우사, 운사, 풍백의 신을 부르는 소리로 전해진다. 땅과 하늘의 온전한 보살핌을 받은 사물놀이의 소리는 이제껏 살아 낸 우리 몸에 밴 천지인(天地人)의 소리, 그 자체다. “사물놀이 악기는 우리 주변의 재료로 만듭니다. 오동나무, 소나무, 개, 소, 작은 조랑말... 그러니 사물놀이의 가락도 우리 생활 문화 속에서 수천 년 동안 형성된 우리만의 미학인 거지요. 말과 글보다 훨씬 앞서서 몸에 새겨진 천성의 가락입니다.” 김덕수가 의젓한 장구를 응시하며 말한다.

사물놀이는 사람의 신명과 흥을 돋우지만, 본래 사물의 존재는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사물’은 불교에서 나온 용어로 각각 물고기, 새, 네발 짐승, 인간의 육신과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놀이’라는 단어에서 짐작하듯, 우리의 사물놀이는 신보다 인간에 가까웠다. 태어나고, 살고, 견디고, 죽는 인간들이 스스로를 위무하기 위해 만든 태초의 소리. 거문고, 가야금, 대금이 사대부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다면 꽹과리, 징, 장구, 북은 보통 사람들의 것이었다. 타악기만큼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행위로 심장과 혼을 두들기는 울림을 창조하는 악기가 또 어디 있으랴. 일을 할 때에는 노동의 악기, 풍년이 들면 축제 음악, 잔치 때에는 잔치 음악, 전쟁 때는 군악이었던 사물놀이. 군수품으로 압수당하지 않기 위해 마당 한 켠에 징을 묻어놓고 해방만을 기다린 적도, 꽹과리 치고 장구 치는 것이 풍기문란으로 내몰린 ‘새마을 운동’ 시절도 있었지만, 그 암흑의 시절에서마저도 네 악기는 저항과 신명의 이중주를 연주했다. 그래서 사물놀이의 가락 안에는 당나라에 짓밟힌 평화로운 고구려도, 고귀한 예술혼을 가진 백제도, 광복의 기쁨을 맞이한 조선도 모두 생생한 역사처럼 살아있다. 실제 사물놀이의 악사들은 “자, 이번엔 전투 신이야! 모두 눈을 부릅떠!”라고 독려하며 후배를 가르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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