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신명의 숲, 사물놀이 (3)
등록일 2008.08.19 조회수 1941
사물놀이는 음악적으로도 단순한 악기로 알려진 타악의 미학을 다시 쓴 장르다. 각 사물의 꼴은 사물이 내는 소리의 높낮이, 울림의 정도와 어김없이 직결된다. 꽹과리가 그렇게 작은 이유도, 징의 채에 헝겊을 갚는 이유도, 장구가 두 개의 면을 가지고 허리가 잘록한 이유도, 북을 명주 천으로 둘러 매는 이유도. 악기 고유의 높낮이는 음의 장단을 만들고, 장단은 조화를 이루면서 가락과 리듬을 만든다. 긴장과 이완, 음양, 오행의 기운이 살아 숨쉬는 소리의 숲을 만들어낸다. 소리를 사방에 흐트러뜨리는 듯 들리는 사물놀이에도 오랜 질서가 있다. 사물 악기의 음양 대립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굴러가며 합쳐지고 부서지는 과정의 질서 같은 것. 시계 초침 같은 메트로놈에 충실한 박자도 ‘뽕짝뽕짝’하는 트로트, ‘쿵쿵딱’하는 록도 아니다. 사물놀이의 소리는 장단의 호흡이 고루 섞여 있는 혼합 박자다. 둘의 호흡으로 갔다가, 셋으로 갔다가 넷으로 퍼졌다가 다섯으로 감겨서 끝나는 우리만의 억양, 우리만의 장단. 넘쳐 오는 소리를 몸으로 듣다 보면 빠르기의 리듬만이 아니라 혼성 4부 합창같은 화성의 느낌마저 감지할 수 있다. 관객들이 자신이 무대에 선 듯 흥겹게 동참할 수 있는 것도 사물놀이만의 자유롭고 정연한 세상의 질서 덕분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사물놀이 악사들이라 해도, 나이를 먹어 버린 이들은 짧은 레퍼토리 하나를 마친 후에도 천국과 지옥을 몇 번이나 오간 듯한 표정이었다. 악기를 제 자식처럼 아끼면서 제 몸은 찰나의 환희를 향해 끝까지 내달리는 것이다. 채를 휘두르는 건 손목이 아니라 발끝에서부터 파도치며 올라오는 전율이며, 상모 돌리기는 목이 아니라 호흡과 오금으로 하는 것이다. 정중동의 변화무쌍한 호흡이 듣는 이의 그것까지 지배하는 이 무대가 바로 우주다. “사물 하는 사람들은 정신과 몸을 건강하고 밝게 유지하기 위해서 평소에도 늘 신경 씁니다. 우리 생의 정점은 연주의 순간이기 때문이죠. 나머지는 절정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김덕수는 어린아이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장단이 시작됨과 함께 이내 무아지경에 빠지는 이들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음악이 주는 감동이라는 것이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된다. ‘앉음반(앉아서 하는 사물놀이)’이 시작적인 면인 사물놀이를 음악적으로 재발견하게 했다면, 서서 온 무대를 휘젓는 사물놀이는 사람의 몸이 어떻게 경이로운 소리를 그릴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촬영내내 스튜디오에는 하모니카 연주가 인상적인 ‘Love Me Do'의 비트가 깔렸다. 김덕수가 흥을 돋워 보자고 제안한 비틀즈였다. 이광수는 고고풍의 음악에 맞춰 꽹과리를 들고 춤을 추고, 얼쑤 추임새를 넣고, 트위스트 춤을 췄다. 사물 악기의 소리는 30년 전 그들의 선율과도 잘 어울렸다. 세상의 이치가 만든 악기로 이뤄진 사물놀이는 태생이 다른 가락을 끌어 \안을 수 있는 넉넉한 음악이다. 이번 30주년 기념 공연은 삼도설장구가락, 삼도농악가락, 판국, 명인 개인놀이 등 예인들이 젊음을 바친 사물놀이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세월의 나이테를 악기에 새겨 만든 소리가 심장이, 살갗이, 맥박이 되어 열정을 일깨우는 순간의 감흥을 그 어떤 고상한 예술로 대신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모던할 수 없는 시대, 오랜 것을 붙잡고 산다는 것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다. 이젠, 신명의 숲에서 길을 잃어도 좋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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