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신명의 숲, 사물놀이 (4)
등록일 2008.08.19 조회수 2321
꽹과리
꽹과리가 깨어나면 세상도 깨어난다. 지름 7치(21cm)의 작은 쇠 원반은 쇠 채를 만나 야무진 소리를 만든다. 네 가지 악기 중에서 가장 먼저 운을 띄우고 가장 먼저 찾아드는 리더. 사물의 얼굴이라 마패, 낯짝이라는 별명을 가진 꽹과리는 가장 양의 기운이 강하며 듣는 이에게도 세상의 중심에 느낌을 선사하며 양기를 한껏 북돋운다. 특히 이광수의 꽹과리는 삼라만상의 소리를 품고 있다. 물이 흘러가고, 천군만마가 달려가고, 광풍이 불고, 생명이 xor동하는 것까지. 본디 꽹과리가 그런 악기다. 천둥번개의 소리, 불의 소리, 신을 불러내는 쇠의 소리. 아담한 몸채의 꽹과리는 가장 시끄럽고, 가장 활동적이며, 가장 빠르고, 가장 거친 호흡을 내쉰다. 꽹과리를 친다는 건, 그냥 두들기는 것이 아니라 까다로운 소리를 청량하고 때론 처연한 소리로 다듬어 내는 일이다. ‘쇠잡이는 꽹과리를 5만 개쯤 깨뜨려야 비로소 5만가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이들 사이에 전해 오는 잠언. 서늘한 광기를 품은 꽹과리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처럼 가만 놓아 두어도 양기를 발사하느라 들썩거린다.
천방지축 패기만만한 아들놈을 너그럽고 두터운 손으로 쓰다듬는 아버지처럼, 이광수는 잘 벼린 녹빛으로 희번덕거리는 꽹과리를 쓰다듬었다. 네 명의 연주가 시작되자 꽹과리는 가장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울림으로 요동쳤다. 꽹과리를 세운건, 혹은 잠재운 건 어쩌면 제 주인의 비나리였을지 모르겠다. 이광수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비나리를 하는, 몇 몇 남지 않은 구음의 명인이다. 천지개벽 이후 세상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역사를 읊으며 살풀이, 액풀이, 덕담, 축원을 기원하는 비나리는 사물놀이의 정신적 토대 같은 것이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기나긴 세상과 그 기운을 받은 사물의 역사는 그의 구슬픈 비나리에도 묻어난다. ‘앞으로 열 두 강, 뒤로 열 두 강을 건너 우리가 여기까지 왔으니...’ 그러고는 다시, 꽹과리의 울림이 온몸을 날카롭게 관통했다.

장구
장구는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타악기다. 두 개의 면을 가지고, 두 개의 다른 소리를 내며, 양문을 잇는 끈의 작은 가죽 조각만으로도 튜닝이 가능한 섬세한 타악기. 높고 낮음, 음과 양, 결국 하늘과 땅을 가진 장구의 존재는 김덕수의 말처럼 사물놀이에서 절대적이다. “장구 하나만 있으면 삼일 밤낮을 신명나게 놀 수 있다”할 만큼, 균형감과 화려한 신명을 함께 알아 의젓한 악기. 꽹과리가 세차게 이끈 분위기를, 장구는 더욱 흐드러지게, 풍성하게, 맛깔 나게 돋운다. 어떤 사내도 장구를 매는 폼새부터 무릎을 꺽고, 허리를 돌리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사뿐사뿐 발을 떼며 연주할 때는 여성적인 자태가 된다. 소나기로 퍼부었다가, 이슬비로 내렸다가, 속삭였다가 소리 질렀다가, 장단을 길게 연주하면 구슬픈 단조가, 짧게 연주하면 경쾌한 장조가 되는 장구 소리는 유연하고도 아리땁다.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 몸을 낮춰 장단을 조율하는 장구는 한 집안의 재간둥이 고명딸 같은 존재다.
빼어난 장구도 김덕수의 손길이 아니었다면 그 자태를 뽐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장구 소리는 겸허하다. 다섯 살에 아버지와 집을 떠나 어른의 어깨를 타고 노는 ‘새미’역으로 남사당패에 들어간 후 장구를 제 몸처럼 아낀 지도 어느새 50년. 그저 잊혀진 풍물악기 중 하나였던 장구를 사물놀이를 세상에 알렸다. 국내외 수많은 ‘사물노리안’들이 정석처럼 배우는 삼도설장구가락, 삼도농악가락 등의 레퍼토리는 모두 그가 음악적 이론에 근거해 새롭게 정립한 장구 가락. 사물놀이가 타 음악 장르를 포용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한 것도 그이ㅡ 몫이다. 그는 시장판에서 공연장까지, 한국 외딴 섬에서 뉴욕에까지, 일 년에도 수천 번 서는 무대에서 재즈, 힙합, 클래식, 비보이 댄스 등과 결합한 사물놀이, 그리하여 가장 한국적인 월드뮤직을 선보여 온 예인이다. 뱃속에서부터 사물놀이를 듣고, 장구를 갖고 놀며 자란 아들은 래퍼(‘슈퍼사이즈’)가 되었다. 또 한번, 열린 음악 사물놀이의 영역 확장이다.


북은 엄격하지만 깊고 넓은 소리를 만든다. 베이스의 역할로 가락과 장단을 더욱 감칠맛 나게 해주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아버지와 같다. 어머니인 징과 서로 소리를 주고받다 보면, 북의 소리는 더욱 강해진다. 박을 힘있게 짚어 가면서 그 rlr상을 힘찬 춤으로 펼쳐 나가는 기둥 같은 악기. 가슴속에서 울림을 만드는 북은 그 꼴이 간단한 만큼 어떤 대륙에서든 다른 타악기의 뿌리 노릇을 하는, 가장 오래되며 가장 원초적인 악기다. 최종실이 북을 칠 때, 명치끝부터 머리끝까지 몽롱해지면서 그 작은 공간이 망망한 우주처럼 부풀었고, 아버지의 가슴처럼 넓어졌다. 그리고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다양한 장단, 가락, 색깔의 북소리가 그의 손에서 섬광처럼 뻗어 나왔다. “두드리면 열립니다. 문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세상이 열립니다.” 이 무대에서만큼은 반드시 북을 잡았던 최종실의 북소리는 감정을 가진다.
북을 치고 있는 최종실의 모습에는 유유한 리듬이 스며 있다. 북채를 든 그의 모습이 거대한 회화처럼 보인 건 그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인 자반 뒤집기의 묘미로 몸에 가락을 익혔기 때문일 것이다. 자반 뒤집기는 어지러워서 세상이 e같이 돌아가면 안되고, 몸을 돌리면서도 관중을 지켜 보아야 하는 기술, 몸으로 그리는 우리의 가락이다. 덕분에 북을 치는 그의 손목은신명의 리들을 아는 사람의 것이다. “눈을 감고 천 명이 치는 장구 소리 중 김덕수 선생의 것을 골라내라고 하면 골라낼 수 있습니다. 장구 소리가 몸에 밴 느낌이 있지요. 우리는 연주를 통해서 서로 기를 받습니다. 그건 다른 후배나 제자들과는 불가능한, 소통의 극치입니다.” 두드림이 운명이었다는 그의 말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징은 인내의 악기다. 한 장단을 일컬어 1년 12달 365일로 본다면, 징은 1년을 참는 인고의 악기다. 덕분에 북은 4계절 장구는 12달 꽹과리는 365일을 살 수 있다. 혈기 방장에게 튕겨 나가는 나머지 세 악기의 소리를 표용력 있게 감싸 안는 징은 그래서, 어미니의 악기다. 징이 놀아야 다른 악기도 맘 놓고 놀 수 있다. 연주가 다양하지도 않고, 치는 횟수도 많지 않지만 첫 박을 담당하는 징이 제대로 박자를 짚어주지 않으면 나머지 치배(타악기 치는 사람)들의 소리는 길을 잃는다. 그 소리 역시 은은하고, 웅장하며, 부드럽게 길고 긴 여운을 남긴다. 채 끝에 헝겊을 감아 징의 한가운데를 밀치듯 칠 때면, 비록 쇠의 기운을 갖고 있는 징이지만 되바라지지 않고 웅장한 울음을 내뿜는다. 그 울림은 몇 고개를 넘고 넘어 내 몸에 닿고, 등을 타고 내려가 발 딛고 선 땅의 기운을 그대로 받게 한다. 특히 남기문의 징에는 척박한 땅을 견뎌 온 느린 시간의 미학이 느껴진다. 남기문은 사물놀이의 원조 멤버이자 작고한 상쇠 김용배가 “내 예술을 이해하는 유일한 제자”라 칭했던 애제자였다. 30년전 ‘공간사랑’의 맨 앞 객석에서 이들의 공연에 가슴 설레던 남기문은 스승을 대신하여 사물놀이패에 합류했다. 다양한 무대에서 남사당놀이를 알려 온 그는 스승의혼을 담아 징을 두들긴다. 그 마음과 사연을 담아 형님들의 길을 터준다.

Vogue 3월호
에디터 윤혜정
이전글 신명의 숲, 사물놀이 (3) 2008.08.19
다음글 [BBS 양창욱의 아침저널] 김덕수 2015.07.26